보름산미술관 장정웅 관장

십자가 작품. 짚과 소나무, 엄나무를 이용해 십자가의 절망과 부활의 기쁨을 표현했다.

고촌읍 신곡리 수기마을 힐스테이트 뒤편, 큰길에서 벗어나 호젓한 오솔길로 들어서자 차량소음과 아파트숲은 사라지고 색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돼 곳곳에 허물어진 집들이 있고 잡초가 무성해 분명 이정표를 따라 접어들었지만 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보름산미술관이 나타난다.
요즘 보름산미술관은 부활절을 맞아 장 관장의 직접 만든 십자가를 주제로 한 설치미술을 전시하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5월 말까지 열리는 전시회를 둘러보고 장정웅 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것으로 만드니 예수가 우리네 삶속에 다가온 것 같아

장정웅 관장의 십자가 작품

-십자가를 주제로 한 설치미술이 독특하다.
"부활절을 맞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우리의 소재로,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 신앙을 찾으려 전시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것으로 표현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130년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예배드릴 때의 악기나 예식, 목사의 가운 등 형식이 서양의 틀, 서양 흉내를 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유독 그렇다. 교회 건축부터 음악 등 모

장정웅 관장의 그림

든 것에 우리 것이 배제된 채 우리 땅에 자리잡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우리 것들을 우리 스스로 미신이라고 치부하며 무모하게 불사르고 없애버렸던 실수를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기독교가 토착신앙과 결부해 지역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토착화되어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의 한국적 토착화가 필요하다."
-기독교의 상징물인 십자가를 어떻게 우리것으로 표현했나.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짚, 풀, 소나무, 두릅나무 등 정말 친근한 재료를 가능한 그대로 사용하여 십자가의 절망과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고 설치했다. 억센 가시를 가진 두릅나무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귀신을 물리치려고 문 앞에 걸었던 재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글씨와 그림에서 기본이 되고, 우리 제사에서도 사용한 최고의 종이, 한지를 이용해 예수님의 수의를 만들어 입혔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보니 예수님이 우리네 삶 속으로 한결 가까이 다가오신 듯하다."
집안 대대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터라 어려서부터 기독교와 친근한 가운데 자란 장정웅 관장. 아버지가 목회자가 되기를 원해 미션스쿨인 배재학당에 진학했지만 장 관장은 한국화를 공부하며 젊은시절 오히려 불교에 심취했다.
"기독교가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기독교만이 최고라며 지역의 토착신앙과 문화를 말살시켰어요. 이 땅에서도 기독교가 교육 등 발전에 공헌한 것도 많지만 우리것을 미신이라고 배척한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제 기독교계는 우리 문화를 말살시킨 것에 대해 반성하고 속죄해야 합니다."
한국화를 전공하며 우리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던 장 관장. 장 관장은 우리네 전통색인 오방색을 이용해 십자가를 만들어 교회 강단에 거는 등 기독교와 우리문화를 접목시키려 애썼다.
"난리가 났어요. 울긋불긋한 색으로 십자가를 만들었더니 무당의 색으로 어떻게 신성한 십자가를 만들었냐고. 너무 아쉬웠어요. 우리네는 어렸을 적 명절이면 오방색으로 만든 색동저고리를 입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무당의 색이라고 하며 배척하는지. 색동은 즐거움, 환희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색동 십자가는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반대가 심했지만 장 관장은 기독교와 우리문화를 접목시켜 작품활동에 꾸준히 매달렸다.
"기독교의 큰 잔치인 추수감사절도 흥겨운 우리가락이 어우러지면서 호박고지시루떡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우리 전통 잔치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했으면 합니다." 장정웅 관장의 바람이다.

미술과 차 한 잔...도심 속 편안한 쉼터

보름산미술관 전경

보름산미술관은 장정웅 관장이 평생 수집한 망와, 석물, 고가구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장 관장 자신의 작업실로 꾸미기 위해 손수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 올려 지난 1997년 지은 건물이다.
보름산미술관은 장 관장이 직접 수집한 망와를 전시하는 별관 망와상설전시실과 장 관장이 직접 선정, 기획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본관 갤러리, 어린이들의 놀이터이자 망와를 테마로 한 체험공간인 북카페, 그리고 전망좋은 꼭대기 층에는 차와 함께 쉴 수

망와전시실

있는 카페로 이루어져 있다.
망와(望瓦)는 예전 기와지붕에서 용마루 끝에 장식 겸 세우는 우뚝한 암막새를 말한다. 망와에는 다양한 귀신형상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집안에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 한다.
-어떤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은지.
"지금까지의 미술관 혹은 박물관은 작품을 전시하고 보여주는 차원에서 끝났다. 요즘에는 체험도 많이 하지만, 개인적으로 체험을 넘어서서 교육을 하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어린이 교육뿐만 아니라 주부들, 특히 3,40대 주부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 '미(美)'가 무엇인지, 삶에 '아름다움'을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수백 명이 와서 들썩거리는 것보다는, 몇 명이라도 와서 여기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내가 그 작은 그림을 보고 인생이 바뀐 것처럼 작품을 보고 삶이 변화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이런 장 관장의 꿈은 보름산미술관 학교로 이어졌다. 보름산미술관 학교는 미술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문화강좌다.
"보름산미술관 학교는 낯설고 어려운 미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미술이 친구가 되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놀이터입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마당이지요."
보름산미술관 학교는 유아를 위한 '유아미술교실',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미술관 ABC', 성인들을 위한 '칠보공예' 등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화창한 봄날, 잠시 짬을 내 망와와 전시중인 미술품도 감상하고 멋진 풍광 속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팁 하나. 미술관 입장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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