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널응접실 - 이 탄 양촌읍 보건지소 소장

서울에서 나고 자란데다 친가 외가 모두 서울인 기자가 상상한 읍사무소 내 보건지소 소장님의 모습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큰 목소리로 진료를 보는 풍채 좋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인터뷰 전 얻은 사전정보에 의하면 ‘군 복무중’인 공중보건의라고 한다. 눈 내리는 겨울 날 만난 양촌읍 보건지소의 소장님은 180센티가 넘는 큰 키에 호탕한 웃음소리를 자랑하는 올해 갓 서른이 된 청년의사였다.
스스로 호(好)청년이라 말하는 의사 이 탄, 사람 이 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의사’ 이 탄을 말하다

딱히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기대가 컸고, 집안에 의사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바람에 의대에 진학했다. 그러다보니 학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었고 과연 잘 한 선택인지 의구심도 생겨 결국 휴학을 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탄(坦:평평할 탄, 평탄할 탄)과는 다르게 요즘 말로 ‘삐뚫어질테닷!’이란 마음이었다. 휴학을 하면서 바에서 바텐더 생활도 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아카펠라 그룹 활동도 하고 길거리 공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본인 표현을 그대로 빌려 ‘태생이 (모)범생인지라’ 결국 학교로 돌아왔고 잘나가는 의사, 스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졸업을 하고 군복무를 위해 공중보건의가 됐다. 처음 복무지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도. 인천에서 5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야하는 그 곳은 관사에서 창문을 열면 북한땅이 보이는 말 그대로 최전방이었다. 700~800명 정도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었고 음식점, 약국, 병원도 없었다. 그렇다고 환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낚시하러왔다가 실족해서 부상을 입은 사람, 목함지뢰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맹장염 환자를 급히 이송해야 하는 상황인데 궂은 날씨로 배가 뜨지않아 결국 헬기를 띄우기도 했다.
“혼자 종합병원이자 응급실이 되어 정신없이 일을 했죠.”그리고 이런 경험은 직업의식이나 사명감이 없던 그에게‘잘 나가는 의사가 아니라 쓸모있는, 도움이 되는 의사가 돼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했다.

대청도를 나와 양촌읍 보건지소로 왔다. 대청도 생활에 비하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에게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병원에 갔을 때 누구나 한번쯤 권태롭고 차갑기만 한 의사들을 경험해 봤을 겁니다. 저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말로만 친절한 의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친절한 마음을 담은 진료를 하고 싶습니다.”


‘사람’ 이 탄의 이야기

그는 음악이 좋다고 한다. 노래도 잘 부른다고 스스로 말한다.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진행된 ‘광복70주년 국민대합창’에 김연아 합창단으로 활약했다. 김연아의 팬이기도 했고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갖춘 20대를 모집대상으로 했기에 자신이 딱 적합하다고 생각해 지원,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창단에 선발돼 무대에 섰다.
언제부터 음악을 좋아했냐고 물었더니 11살 때 가수 윤도현을 보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단다. “의욕도, 숫기도 없는 키도 작은 소심한 아이였어요. 그런 아이가 기타를 치고 싶다고 했더니 오히려 어머니가 좋아하셨죠.”그 때부터 시작한 음악과 노래실력은 이제 지인의 결혼식 축가를 비롯해 노인복지관, 요양보호센터, 지역 축제 같은 무대에 설 만큼이 됐다.

이 탄 소장은 ‘의사가 안됐으면 바를 운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부담없이 찾아와 편안하고 자유롭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만드는 것이 ‘사람’ 이 탄의 꿈이자 로망이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피규어와 나노블럭도 이 사람 일면을 보여준다. 홀로 관사생활을 하는데 보통 남자들이 하기 쉬운 술, 담배, 도박과 비교할 수 없는 혼자하기 가장 좋은 건전한 취미생활이라고 강조한다. 손재주가 좋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만들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도 편해진다고 말한다.

어려서 부터 할머니와 함께 생활해서 어르신이 편하다고 하는 이 탄 소장. 그렇다고 예의없이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제가 어르신을 좋아하다보니 어르신들도 저를 예뻐하시는거죠.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진료시간이 한없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힘들지는 않습니다.”인터뷰 때문에 대기실에서 기다리셨던 어르신에게 진료가 끝난 뒤 건강음료에 직접 빨대를 꽂아 드시라고 권하는 모습은 정말 ‘호청년’의 모습, 그대로다.
이 젊은의사는 군복무를 마치고도 양촌에 남고 싶다고 했다. “인천사람인데 몸뚱이 하나 가지고 와서 관사생활을 하면서 애향심이 생길만큼 김포와 양촌에 정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김포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 같고, 여기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김포에 정착하고 싶습니다.”그래도 좀 답답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맥○○○ 햄버거만 있으면 서울”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세상이 달라지면서 의사에 대한 인식이나 선호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예전에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중요한 일이기에 ‘하늘이 내리는 직업’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직은 젊고 패기로 가득찬 이 젊은 의사가 10년, 20년후 어떤 의사가 되어있을지 기대된다.

이유경 기자

이유경 기자  -

<저작권자 © 김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