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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서 주최한 제11회 김포뱃길축제 행사 가운데 하나였던 시민노래자랑 참가자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190cm는 될 듯한 장신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파란 눈의 외국인. 첫 번째 참가자로 나와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렀고, 유창한 한국어 솜씨를 뽐내며 부상으로 받은 쌀 포대를 어깨에 이고 무대를 내려갔다. 남다른 포스가 느껴진 그를 만나기 위해 장기동에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클라린스 윌리엄손(70)·박행화(59) 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반겼다. 두 사람이 살기에 안성맞춤인 아파트는 갓 내린 고소한 커피향기로 가득했다. 박행화 씨는 이번 노래자랑에서 새타령을 불러 1등을 차지했다. 그녀는 “노래자랑에 부부가 같이 나가면 한 사람은 꼭 상을 못탄다”며 자신보다는 남편이 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자랑대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윌리엄손 씨의 한국살이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통, 클라린스 윌리엄손(영어이름)
‘1946년 개띠. 70살’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클라린스 윌리엄손(Clarence Williamson) 씨. 스스로 위암선(魏岩善)이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 그는 19살부터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다. 3년 후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20년을 근무하고 제대 후 미국으로 귀국했다.
“70년대 을지문덕훈련이었나… 박정희 대통령과 미8군 관계자, 한국군 고위 관계자가 비밀 지하시설을 방문했다. 당시 15분 가량 시설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끝난 후 박정희 대통령이 영어로 ‘우리말을 아주 잘한다. 고맙다’라며 악수를 청해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인에게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말한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며 너무 기분이 좋아 며칠을 손을 씻지 않았다고 우스개소리를 한다. 아무리 봐도 생김새만 외국인이지 속내는 한국인 그 자체다.
미국으로 돌아가 워싱턴대학 아시아 연구팀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어를 가르쳤던 김용기 교수의 추천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하 정문연)에 입학했다. 전공은 한국 현대정치사. 유신헌법, 한국전쟁에 대해 연구를 했고 정문연 최초 박사학위를 취득한 미국인이 됐다. 이후 송담대(용인전문대학), 덕성여대에서 영어영문학교수로 재직했다.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통·번역일을 하다 퇴직했고 2014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김포에 자리잡았다.
올해 초에는 3개월 정도 대한민국 국방부 유해발굴단과 하와이에서 온 미국국방부 유해발굴단의 통역을 맡아 강원도 철원과 전라남도 영광을 다녀왔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가운데 약 5000여명 정도가 행방불명 등으로 확인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통역을 하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전쟁의 참상에 대해 한참을 말했다.
발 밟은 인연이 평생의 인연이 되다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부인 박행화씨와의 만남이 궁금해졌다. 시간을 거슬러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해의 이야기다. 당시 정문연에서 공부중이던 윌리암손씨는 혼잡한 서울지하철 2호선(사실 그는 녹색선이라고 말했다)에서 실수로 박행화씨의 발을 밟았다. 체구가 작은 박행화씨는 “그 큰 발로 밟았으니 얼마나 아팠겠어. 쳐다봤더니 외국인이더라고. 말도 안 통할꺼 같아서 그냥 내렸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녀를 윌리엄손씨가 따라왔단다. “얼굴이 빨개지고 눈물이 글썽글썽 하는데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마음이 아팠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만남을 시작하고 5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1995년에 결혼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윌리엄손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그는 한국아이를 입양하여 키웠다. 1976년 집 대문 앞에 버려진 아기. 경찰에 신고했지만 인연이라 생각하여 입양을 결심했다. 당시 생후 3개월 된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미국에서 자라 결혼까지 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졸업했어”라며 “한국어, 영어는 기본이고 불어와 독어까지 할 수 있다. 미국방부에서 작업을 하다 현재 노인들을 위한 복지행정과 지원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라며 자랑스러워 한다. 시쳇말로 ‘딸 바보’ 아빠의 모습 그대로다.
부부의 노래사랑 스토리
윌리엄손씨는 이번 노래자랑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인이 1등을 했지만 서운한 마음도 있단다. 미국에 살 때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한인축제 노래자랑에 나가 1등상을 받을 만큼 노래실력도 좋다. 윌리엄손씨는 “한인축제에 나 같은 사람이 나가서 한국노래를 하는게 신기해서 상을 준거 같다”고 말을 하지만 원래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7살 때부터 음악 공부를 하기도 했단다.
박행화씨의 노래실력도 남편의 지도(?)로 가능했다. “남편 때문에 노래를 잘하게 됐다”며 음정, 박자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문화방송에서 했던 ‘주부가요열창’프로그램에도 출연한 경험이 있고, 토마토 축제 노래자랑에 출전해 대상을 받을 만큼 실력자다.
두 사람은 한국노래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해서 여행도 즐긴다. 대한민국 땅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이제는 홍도와 진도를 빼고 안 가본 곳이 없단다. 어떻게 김포에서 살게되었냐는 질문에 “동생이 김포에 살거든. 김포에 신도시도 생기고 그래서 들어왔지. 형제와 가까이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박행화씨. ‘너 없이는 안되겠다’는 말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정작 문화적 차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외국생활을 하면서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박행화씨의 고향인 전남 신안에서 한국 여름의 무더위에 고생한 이야기까지 듣다보니 인터뷰 시간은 어느새 2시간 가까이 흘렀다. 막힘없이 계속되는 이야기는 긴긴 겨울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었던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마냥 끝없이 이어진다. 투닥투닥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묻어나오는 대화와 눈빛이 아직까지 인연을 만나지 못한 기자에게 너무나 부럽게 느껴졌다.
두 부부의 한국살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 여느 부부처럼 겨울철 군밤 익어가는 화롯불 마냥 따뜻하고 구수하며 정겨우리라 생각한다.
이유경 기자
이유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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