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일자: 2006-10-25



휴먼스토리/풍무동 중견가수 오현숙<눈물로 적신 효심>
혹독했던 가난이 준 선물…‘사랑 가득한 인생’

결혼도 하지 않고 40이 넘도록 홀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리고 있는 가수 오현숙씨. 효가 우리사회에서 점차 엷어지는 만큼 지극한 효심은 보석같아서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진다. 풍무동에 거주하는 우리이웃 오현숙씨는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된 고참가수다.

젊은 날 혹독하리 만치 어려운 나날을 딛고 유명인도 됐지만 오현숙씨에겐 늘 병석에 누운 어미니의 그림자로 살고 있다. 지난 91년 이같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국효자상 정립운동본부 한국 원로연예인 상록회가 ‘장한 효행상’을 수여했다. 어렵게 산 사람이 이웃의 어려움도 안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어머니 병간호와 함께 무대에 서지 않는 날에는 어려운 이웃을 찾는다. 오는 2일 사우동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김포시민 사랑나눔 축제’를 개최하는 ‘나누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성회원이다. 지난해 한국장애인협회 경기도지부가 수여한 ‘공로상’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주부가요 ‘노래교실’ 강사이자 상록대학 대중예술원에서 대중음악을 강의하는 ‘이웃 오현숙’씨의 눈물에 젖은 인생을 따라가 본다.

■ 아버지 순직…시작된 처녀가장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심장기능을 상실하고 신장 및 다른 장기기관으로 숨을 쉬는 오현숙씨의 모친은 벌써 10여년을 누워있다. 이제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오늘도 어머니 곁을 지키며 함께 했던 지난 추억을 회상해 본다.

30여년 전 경찰관 출신이던 아버지가 박봉에 시달리던 끝에 선박회사로 전업한 뒤 근무 중 사고로 순직하면서부터 가족의 절망이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소화천식으로 나약했던 어머니에게 가장이라는 십자가가 내려졌다. 그렇게 일곱 식구는 가난이라는 모진 고통 속으로 내던져졌다. 어머니에겐 아버지의 순직 보상금 백만원이 전부였다. 그 당시 큰 금액이었던 아버지의 순직 보상금 백만원은 가족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오현숙씨의 삶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 열여덟 세상모르던 가수의 꿈

당시 그녀의 가족은 부산에 살았다. 여고시절부터 인기가수를 꿈꿔왔던 열여덟 세상물정 모르던 철부지 소녀의 희망은 가족들의 숨통을 더욱 조이는 결과를 만들었다.
평소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던 오현숙씨는 “서울에서 작곡가로부터 확실한 언질을 들었다”며 약간의 과장을 섞어 어머니와 오빠를 설득해 부친의 순직 보상금을 들고 상경했다. 결국 가족들 역시 서울로 와서 미아리 산동네 4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그녀의 뒷바라지에 올인했다.

신바람이 난 그녀는 모 레코드사를 통해 ‘푸른꿈’ 이라는 데뷔앨범을 취입하며 벌써 스타가 된 기분으로 온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희망은 금방 좌초하기 시작했다. 가끔 방송을 타던 노래는 시간이 지나며 뜸해지더니 아예 묻혀 버렸다. 남은 것은 홍보비 명목으로 작곡가에게 바친 돈, 때문에 불어난 빚은 전셋집에서 사글세로 옮기게 했다.

■ 길거리로 쫓겨난 가족 절망의 순간

절망의 끝에 선 그녀는 마지막을 선택했다. 거리를 쏘다니며 수면제를 사다 모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하나둘 수면제를 삼켰다. 이제 더 이상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차디찬 겨울 하얀 의식의 공백속으로 부모와 식구들의 모습이 가물가물 사라져갔다. 닫혀진 눈꺼플 너머로 흐릿한 빛이 보였다. 여기가 하늘나라인가? 그러나 눈을 뜬 그녀는 어머니의 퉁퉁 부어오른 눈과 만났다.
“현숙아! 살았구나, 살았어!”.
“엄마!”.........

3일 만에 깨어난 오현숙씨가 어머니와 함께 석관동 집에 도착했을 때 식구들은 길거리로 쫓겨나 있었다. 처량스럽게 내던져진 살림살이와 처마 밑에서 웅크리고 떨고 있는 동생들, 복받쳐 오르는 설움으로 어머니와 육남매는 하염없이 목놓아 울었다.


■ 다시 쓴 젊은 날의 초상

오현숙씨는 그때 ‘식구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고 결심했다.
수중에 가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학업도 중단한 여고 중퇴생인 그녀의 길은 다시 노래를 부르는 일 말고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힘겹게 얻은 밤무대 일자리는 ‘악’에 바친 돈벌이 그 자체였다. 동생 네 명의 학비를 대기도 급급했지만 새벽 3,4시까지 억척스레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부르고 또 불렸다. 서너 해를 그렇게 이를 악물고 젊은 날의 초상을 다시 써 내려갔다. 일본으로 취업 나가면서부터, 서서히 집안사정이 나아지고 한푼 두푼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귀국 후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성남에 분식집을 냈다. 낮에는 분식집에서 밤에는 밤무대에서 이웃들에게 ‘지독한 처녀’라는 소릴 들어가며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 올라 서기위해 뛰고 또 뛰었다. 길고 암울했던 터널을 지날 쯤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는 모범가수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날 눈 화장이 지워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 행복은 돈 벌 때 아닌 베풀 때

어느덧 불혹의 나이. 그녀는 “어떻게 삶의 한순간들을 이겨내고 여기 이곳까지 와 있는 것일까? 이제 고생은 끝났다.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들 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결혼을 생각하기도 했다. 유혹도 많았다. 그러나 술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못할 만큼 자신을 엄격하게 추슬러 온 덕분에 결혼에 대한 유혹도 스쳐 지나갔다.

거울 속에 잔주름,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주위사람들의 말을 곧잘 듣곤 했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앞으로 얼마나 노래를 더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어렵던 시절의 행복은 돈을 벌 때가 아니고 베풀 때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언제부턴가 가수생활을 통해 버는 돈을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기부하고 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어려움 속에서 가난에 찌들었었던 추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려 애쓰고 있다.

김다빗기자 davad@gimpoj.com

06.6.7

김다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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