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우·조선숙 씨 부부

"(위안부의)…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강압에 의한 것이며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실시됐다"
 
1993년 고도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에 대한 첫 공식 사과 발언이다. 이른바 고도담화. 이어 그해 11월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경주를 방문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총리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의해 한국인이 모국어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고 이름을 일본식으로 개명 당했으며 종군위안부, 징용 등 여러 형태로 괴로움을 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것은 다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토대가 된 것으로 외교가에 알려져 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일본의 반성을 이끌어 낸 주인공은 당시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외교부 아주국장이 된 유병우 前 주 터키대사(73)다.

한국 외교부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일본전문가인 유병우 前터키 대사를 김포시 월곶면 문수산 자락 ‘생명의 숲’ 자택에서 만났다.

34년에 걸친 외교관 인생. 駐일본공사에 이어 오사카총영사로 정년퇴임한 유병우 前대사는 치열한 외교관 인생에서 지금은 아내 조선숙씨와 함께 목공과 화가로 가장 행복한 인생을 꾸며가고 있다. 오월 하순,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천여송이 꽃이 장관이었다는 튤립이 지면서 탐스러운 장미 수백송이가 필자를 반겼다.

■ ‘함께 바쁘고 함께 여유로운’ 부부

유병우·조선숙 부부는 2004년 외교관의 마지막 임지였던 일본 오사카에서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에 새로운 인생의 여장을 풀었다. 공직에서 은퇴한 이후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그들 부부는 남편 유병우씨가 터키대사로 있던 시절, 김포와 강화, 양평 등지를 돌며 집터를 찾았고 음식점과 간판, 카페가 없는 김포시 월곶면을 선택했다. 그리고 10년 후 은퇴를 6개월 앞두고 직접 설계를 하고 건축하기 시작해 지금의 꽃과 숲이 어우러진 그들만의 공간이 됐다.

장미와 잔디는 남편이 관리하고 꽃밭은 아내가 담당한다. 그리고 텃밭과 과수는 공동으로 관리하는 데 아내의 일이 더 많단다.

‘함께 바쁘고 함께 여유로운’ 부부의 하루는 넓은 뜰조차 ‘집안에서 부부가 보는 정원과 이웃이 들여다보는 정원’으로 만들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어느 쪽에서 보아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집을 건축한지 13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간 꽃과 나무를 가꾸고 정원을 꾸미는 일이었지요. 처음 몇 년간은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 남편은 목공, 아내는 화가가 되다

정원 가득 생명을 품은 식구(꽃과 나무)들을 소개하는 부부의 모습은 예전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외교관이 아닌 친절하고 소박한 농부의 얼굴이다.

유병우 부부는 정년을 앞두고 몇 년의 준비과정을 가졌다. 남편은 목공을, 아내는 그림을 선택하고 쉬는 날이면 그 방면의 전문가를 찾아 공부하고 또 수련했다. 유병우씨가 목공을 선택한 이유는 직접 집을 수리해야 하는 전원생활을 위한 것이며 조선숙씨가 그림을 선택한 것은 평소 좋아한 꽃들이 금방 지는 것이 아쉬워 그들을 그림에 담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그들 부부는 김포에서 목공과 화가가 됐다. 부부가 함께 건축한 집안 1층에는 아내가 그림을 그리는 아틀리에와 집수리를 위한 남편의 공방이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집안 곳곳을 채워가는 아내의 그림들과 집 울타리 목책부터 식탁, 의자, 서랍, 아내의 작품을 위해 만든 액자 등은 더욱 깊어진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본다.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가구의 대부분을 만든 남편 유병우씨는 어릴 때 꿈을 이루고자 2005년 첼로를 들었다.

“가구는 만들어 놓으면 없어지지 않아 파손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아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첼로였으며 3년이 기초과정을 거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고 지금은 4년 전 창단한 김포시민오케스트의 단장이 되어 목공에서 첼로리스트 하나를 더 추가했다.   

■ ‘매일 매일 감사하며 살아요’

유병우 씨는 오는 7월, 세 번째 오케스트라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아내 또한 그동안 그려온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10월 2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온’에 전시일정을 잡았다. 당초 아내는 남편이 연주할 아트홀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었으나 아트홀 여유 일정이 없어 부득이 서울을 선택했단다.

이들 부부는 이웃들에 대해 특히 정겹다. 용강리 주민들과 성당교우들이 집을 방문하면 정원은 정식 코스의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변한다. 남편이 고기를 굽고 아내는 텃밭에서 딴 야채로 만든 샐러드와 직접 구운 빵을 내온다.

그리고 부부의 정원은 가끔씩 음악회의 무대도 된다. ‘문화’로 설명되는 공간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좋고 내일이 더 기대돼요. 매일 매일 감사하며 살아요” 부부는 문수산 자락이 너무 좋단다.

사진 왼쪽부터 김포시민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유병우 전 대사. 조선숙 씨의 아틀리에. 유병우 씨가 직접 만든 가구와 액자. 유병우 씨의 공방.

최의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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