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하성면 전류리에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시를 짓는 할머니가 산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심경인(77)이지만 독거노인이자 시인이라 불린다. 특히 가을이 되면 심 할머니의 시상은 더욱 풍부해져 밭에서 캐낸 것들이 다시 시가 되기까지 그녀의 밤은 하얗다. 전류리 강변도로를 따라 ‘전통된장’이 보이는 길로 들어서 우사 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저만치에 심경인(77)할머니가 들깨를 털고 있었다. 추워지기 전에 들깨를 털어야한다는 심 할머니 곁에서 사는 이야기와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65세에 시인으로 불리다

밭에서 낮에 캐낸 심 할머니에게 감자와 마늘은 그날 저녁 시(詩)가 됐다.
 
“춘분이 지나면/나는 정형외과 의사가 된다/그가 눈을 감으며 잠시 마취에 들자/나는 그의 잃어버린 세월을 도려내/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낸다/이제 그는 오순도순 자식을 키우며/기쁨을 보내올 터/........"<감자를 심으며> 일부.
 “가을이네 마늘 심네/나 혼자만 마늘 까네/나 혼자만 땅을 파네/내 눈 내가 찔렀다네/누구 하나 돕지 않네/터벅터벅 흙을 파네/.....” <마늘농사> 중 일부
 
 심경인 할머니는 77년을 살아오면서 부모님이 지어준 심경인이란 이름 외에 수많은 또 다른  이름을 지니며 살아왔다.  셋째 딸, 아내, 며느리, 엄마, 할머니, 농사꾼, 독거노인 등이다. 이런 이름 중에 심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65세부터 불리우기 시작한 시인이라는 이름이다. 시인이란 이름은 혼자 살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시를 지으면서 얻게 된 것으로 공책에 깨알처럼 써내려간 수백편의 시가 가져다 준 자랑스런 타이틀이다.

 시 쓰는 게 가장 재밌고, 행복해 

 김포시 양촌읍에서 태어나 6·25를 겪으면서 양촌초등학교 2년을 다닌 것이 정규교육의 전부다. 이런 이유로 맘속에는 늘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농사지으며 바삐 사느라 글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삼양라면이 마악 생겨나던 시절, 하성 주부대학에 시어머니와 함께 다니며 힘들게 한글을 배웠다. 그 당시 주부대학에 다녀온 날은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편찮으신 시어머니 약을 사러 갔다가 교통사고로 남편이 떠나고 또 일 년이 되지 않아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김포시청(당시 군청) 옆에 생긴 ‘김포여성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문예대학에 가시는 게 좋겠어요”

 “별빛이 반짝이는 한 여름 밤/모닥불 옆에 도란도란 모여앉아/줄부채 투덕투덕 모기 쫓는 소리/소리 소문 없이 날아와/연 약한 침 한방 주고/자그마한 붉은 점 생기는...." <여름밤> 중 일부.
 
그 시절 심경인 할머니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숙제로 내준 것도 아닌데 매주 시를 썼고 아카데미 학생들 앞에 나서서 읽어주고 때로는 팀장에게 낭송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전류리에서 사우동 군청까지 가려면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하성면 소재지에 가서 다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또한 매주 시 한 편을 써서 낭송하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심 할머니는 “아카데미에 다니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재미가 있어, 이른 새벽에 농사일, 집안일을 해놓고 부지런을 떨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카데미의 조남옥 팀장이 “김포 문인협회에 문예대학이 생겼으니 어르신은 아카데미에 오시지 말고 문예대학에 가시는 게 좋겠어요.” 라는 말을 듣고 시인의 세계로 옮겨왔다.

낮에는 자연과 밤에는 시와 살아가는 심경인 할머니.

최고의 스승은 자연

김포문예대학에서 심경인 학생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시심을 마음껏 펼쳤다.

할머니는 가족이 곁을 떠나가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지만 시심 안에서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할머니는 사물과 만나고 대화를 한다. 감자의 씨눈을 도려내며 성형외과 의사가 되고, 마늘을 심으면서 가족과 이웃사랑을 꿈꾼다.

 “(중략)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간 너/그렇지만 내 긴 세월을 /순식간에 되돌려주었기에/장미, 너를 용서한다.”  <도둑, 담을 넘다>에서는 담장에 핀 꽃을 보면서 경범을 저지른 도둑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경찰관이 된다.

시인할머니는 자신이 힘들게 재배한 각종 야채들을 이웃과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시를 통해 건강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 지난 2011년 김포문인협회를 통해 시인할머니에게 신인상을 준 심사위원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짧은 배움에서 이처럼 완성도 높은 시를 써낸 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고 평했다.

아이를 키우며 시집살이를 하던 30대 초반, 한글을 배우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룬 시인 할머니는 자연처럼 우리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최의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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