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프 부랑제 과자점' 이병재 대표.

 '쉐프 부랑제 과자점' 이병재 대표의 빵이야기

초등학교 다니기 전, 몸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기몸살 정도였지 싶은데 그 때 어머니가 동네에 있던 ‘독일제과’에서 곰보빵을 사주셨다. 갓 구운 빵이었는지 따뜻한 온기와 달콤한 냄새, 고소한 맛에 정신없이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몇 년 전만해도 ○○제과, ○○명과 하면서 동네마다 다양한 빵집이 있었는데 이제는 동네빵집이 사라졌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서울 빵집이나 부산 빵집이나 빵 맛이 똑같고 종류도 천편일률적이다. 그 와중에 사우동 소위 학원가라고 부르는 길가에 동네빵집을 발견했다. 프랜차이즈에서 밀고 있는 카페도 아니고, 개성있는 인테리어를 뽐내는 곳도 아니다.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장식은 없지만, 40년 동안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빵집아저씨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고소한 버터향과 함께 어우리지는 곳이다.
 

40년 오롯이 한 길을 걸어온 빵집아저씨
‘쉐프 부랑제 베이커리’. 이병제 대표(59)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 대표는 18살 때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아는 형님이 베이커리에서 공장장을 했는데 그 영향이 컸다. 워낙 밀가루가 좋기도 했단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에는 영세업체에서 일을 배웠다. 지금처럼 좋은 기계도 없던 시절, 오븐과 큰 볼(bawl)이 전부였다. 요즘이야 기계가 종류대로 반죽을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일일이 손으로 때려서 반죽을 했고, 밀가루 한 푸대 반죽을 하고 그 반죽으로 여러 빵을 만들었다.

그렇게 기술을 익혀 1988년 겨울이 끝나갈 즈음, 양재동에 자신의 가게를 냈다. 이름은 힐튼빵집. 힐튼이라는 이름 때문에 같은 이름의 호텔에서 3개월 기술을 익혔다. “선배들 밑에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남들 퇴근하고 난 후 몰래 연습하다가 내 가게를 가졌을 때,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김포로 이사를 와서 빵집을 낸 것은 2002년. 어느 덧 김포에서도 1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건강과 맛을 위해 만든 쌀 빵
이 대표의 베이커리에는 쌀로 만든 빵이 많다. 밀가루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 밀가루를 먹으면 생목이 오르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빵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쌀빵 레시피에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고 응용하면서 새로운 빵들을 만들었다. 쌀 빵은 밀가루 빵보다 3배 정도 비용이 더 든다. 공정도 밀가루보다 까다롭다. “쌀은 밀에 비해 온도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계절에 따라 반죽하는 온도도 다르죠. 공정도 밀가루에 비해 좀 더 손이가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아요”라고 말하는 이 대표.

밀가루에 비해 부드러운 맛은 덜하지만 쫄깃하고 식감이 좋아 이제는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 이 대표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쌀로만든 빵은 단팥빵. 여기 들어가는 팥은 이 대표의 고향 고창에서 구입해 직접 만든다.  ‘쌀로 유명한 김포와 잘 어울리는 빵이네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웃으면서  “예전에는 가격도 그렇지만 쌀을 제분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외국에서 사다 썼어요. 요즘은 기술도 좋아져서 좋은 우리 쌀을 씁니다"라고 말한다. 쌀로 만든 다양한 먹거리 개발은 건강에 좋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해마다 쌀 소비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에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쉐프부랑제과자점'의 대표, 단팥빵(오른쪽). 안에 들어간 팥은 이 대표의 고향인 고창에서 가져다가 직접 만든다. 매장 안에는 이 대표가 직접 만든 빵을 맛볼 수 있는 시식코너도 준비되어 있다.

동네 빵집에 대한 고민
기자의 빵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찾기 힘든 동네빵집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 대표는 동네빵집은 동네빵집대로, 프랜차이즈는 프랜차이즈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는 기술력으로 동네빵집을 따라오기 힘들어요. 동네빵집은 자본이 부족하죠. 동네빵집의 괜찮은 빵을 가져다가 프랜차이즈가 조금 손을 대고 특허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여기 업계가 대부분 선후배 관계로 얽히면서 속상한 경우도 많죠.” 

동네빵집이 어려운 것은 인력난도 한 몫 한다고 말한다. 파티쉐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나,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빵집을 여는 사람들이 많지만 충분히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으려는 이들이 많지 않단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가게를 열다보니 실패하는 경우가 많죠. 최소 7, 8년은 기술을 쌓아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가게를 먼저 열어요. 단일품목은 가능할지 몰라도 깊이있는 다양한 빵을 만들지 못하죠.”

김포로 와서 가게를 새로 열고 이 지역 입맛에 맞는 빵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맛있는 빵을 만들어냈던 기억을 들려주면서 빵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급한 마음에 머핀 전문, 마카롱 전문, 그것도 모자라 공장에서 빵을 받아다 판매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고 한다.

이 대표는 김포시에 푸드뱅크가 생기자마자 가게에서 팔고 남은 빵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대한제과협회 경기도지회 김포시지부를 창립,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빵을 좋아해서,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는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아요. 도에서 활동하다 보면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고, 또 좋은 세미나가 있으면 소개할 수 있고, 교육의 기회도 제공할 수 있죠.”

이 대표가 만드는 빵이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자 체인점을 내보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문어발식 경영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신 이 대표의 아들이 앞으로 가게를 이어받을 예정이란다. 다행이 아들도 좋아해서 일찍이 제과제빵학교로 진학을 했다.

건강과 맛을 위해 과감히 쌀 빵을 만들기 시작한 도전정신, 고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수개월을 시장조사하면서 제품을 개발한 장인정신, 그리고 어려운 이웃과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는 마음이 담겨있기에 이 대표가 만드는 빵이 더 맛있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유경 기자

사우동 사우프라자 1층에 위치한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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