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박홍희 한의사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면 어떡할까요 어느어느 병원에 가야할까요~” 어릴 적 불러봤을 이 노래는 배가 아프면 소아과에,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야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배 아프다고 병원에 간적이 그리 많지 않다. 따뜻한 방에 누워 엄마나 할머니가 배를 살살 문질러 주면 아팠던 배가 가라앉고는 했다. 입천장이 데일만큼 뜨거운 숭늉 한 사발 마시면 불편하던 속도 어느 새 편안해졌다.
불과 몇 십 년전만 해도 병원문턱 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119를 부르고 응급실로 달려간다. 한의원보다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를 더 쉽게 찾는 요즘 사우동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의원을 개원한 박홍희 한의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의학도 엄연한 현대의학이다
“경술국치 이후 동양 혹은 우리 전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서양 과학이나 기술을 동경하고 그에 비해 동양의 것은 부족하고 잘못됐다 생각하게 된 거죠.”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 몸을 살펴왔던 한의학을 구닥다리로 치부하고 서구 기술이 진리인 것처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홍희 한의사는 그런 생각이 잘못됐다 말한다.

“한의학은 옛날 의학이 아닙니다. 현대인을 치료하는 현대의학이죠. 사람도 많이 변했는데 의학이 변하지 않겠어요? 그 변화에 맞춰 약도, 치료법도 변했어요. 한방은 사람에게 부작용이 없어요. 어떤 약물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침을 통해 기를 다스리고 몸을 치료하는 가장 부작용이 없는 치료법입니다.”

조기치신(調己治身), 기를 조절하여 몸을 치료하는 침구법의 기본을 말한다. 간혹 ‘병원가면 주사라도 놔주면 약이 몸 안에 들어오는데 한의원은 침 놔주는 것 밖에 없지 않느냐’, ‘양방에 비해 치료기간이 길다’라는 말을 듣기도 할 때면 모든지 “빨리빨리”를 외치며 조급증에 걸린 현대사회가 안타깝다고 한다.


한의사가 되다
박홍희 한의사는 원래 제조업 분야에서 일을 했다. 고려대 지질학과를 나왔지만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해 제조업을 시작했는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오디오 제조업 계통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을 하면서 큰 재미를 느꼈지만, 5년간 일을 하다 한계가 와서 그만뒀다. 그 후 원래 관심이 많았던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중 2때 갑자기 눈이 안보이게 됐어요. 사전 글씨가 한 덩어리로 보이더라구요. 안과를 가봤지만 좋아지지 않았죠. 서산 운산에 유명한 한의사가 있다고 해서 두주동안 침을 맞았는데 놀랍게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런 경험을 겪은 후로 한의학에 관심이 많아졌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부천에서 개업을 했고, 이어 2004년에 친구와 함께 사우동에 한의원을 차렸다. 그리고 11년이 지나 자신의 이름을 단 한의원을 7월에 개원했다. 학창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한의사를 하면서 느낀 이 직업의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내가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신선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건강한 존재예요. 다른 사람의 건강을 살피는데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안돼잖아요? 환자들 치료하면서 스트레칭 시범보이면서 나도 한번 스트레칭을 하는 거죠. 이게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교의 큰 가르침이 아니라 일상과 삶의 터전에서 한의사로서 자신과 보람을 찾아가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법 찾기
박홍희 한의사는 진료할 때 의사를 상징하는 흰 가운을 가급적이면 입지 않는다. “흰 가운은 의사들에게는 작업복이죠. 하지만 오히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벽을 만들어요. 왜 아픈지 같이 고민하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흰 가운은 그렇지 못하죠”라며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기보다는 이웃처럼 편하고 가깝게 얘기할 수 있는 존재이고 싶다고 한다. 또한 환자의 형편, 상태, 직장생활 등을 살펴서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를 해주고자 노력한다고 말한다.

“부모로부터 오는 선천적인 병은 막기 힘들지만 후천적인 병은 생활에서 오기 때문에 예방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의 몸은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거든요. 무조건 수술이나 약으로 해결하기보다 적당한 휴식, 음식섭취, 운동만 제대로 해도 건강을 지킬 수 있어요.”

박홍희 한의사는 “건강은 하루아침에 떨어지는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돈 내니까 의사 당신이 내 몸 좋게 해봐’라는 마음가짐으로는 건강해질 수 없단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참을 때는 참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면 먹고… 이런 삶의 습관이 하루 이틀 쌓여야 건강한 몸이 된다.


최근 백수오 파동부터 몸에 좋다고 하면 검증도 안 된 것들을 마구 사먹는 모습을 보면 신뢰가 없어진 한국사회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고 말한다. 건강에 대해서는 의사에게 물어야 하는데 의사가 미덥지 못하니 그렇게 된 것 같다면서 환자들에게 신뢰받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중국 후한 말 외과, 내과, 부인과, 소아과 등 의료 전반에 두루 통달하여 다양한 치료법을 처방했으며 한의학의 수호신으로 널리 숭배되는 ‘화타’, 침 한번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구한 드라마 속 ‘허준’은 아니더라도 이웃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와 처방, 환자의 형편을 살피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박홍희 한의사의 소박한 웃음이 더 좋은 치료가 될 것 같다.

이유경 기자

이유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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