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 김포시의회 속기사 국경숙 씨]

지난 제156회 김포시의회 임시회 행정복지위원회회의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이날 회의는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점심시간과 잠깐잠깐의 정회가 있기는 했지만 꼬박 하루종일 회의가 진행된 셈이다.
이 회의장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없으면 회의가 시작되지 않는다. 자리는 회의장 한 가운데. ‘그 사람’만을 위한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독특한 자판이 설치돼 있다.
이 특별한 자판의 주인공인 ‘그 사람’은 바로 김포시의회 속기사, 국경숙 씨(42)다.

현대사회의 사관(史官)
속기사(速記士). 단어 뜻 그대로 ‘빨리 기록하는 사람’이다. 국회, 법원, 의회같은 공공기관의 회의에 들어가지만 주주총회, 재개발·재건축 회의, 증권회사 등 다방면에서 일을 한다. “회의마다 나오는 용어나 단어가 많이 달라요. 소속된 집단의 특성을 잘 알고 공부도 많이 해야하는 일이죠.”
국경숙 씨는 대학교 1학년 때 속기와 인연을 맺었다. 원래는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과학도였다. “당시 황우석 박사의 복제양이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라 비전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전공을 선택했죠”라며 웃는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2급, 1급 자격증을 차례로 한 해에 취득했다. 자격증을 따고 처음 일한 곳은 서울시 동대문구의회. 연수 중에 나갔는데 의회소속 속기사를 보조하는 일이었지만 용어도 생소했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 인상착의를 적어가며 작업을 했다. 이젠 경력 15년차, 베테랑 속기사로 김포시의회에서 일을 하고있다.

역사를기록한다는자부심
속기사의 매력이 무엇일까? 국경숙 씨는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역사를 내 손으로 기록한다는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시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어요.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의회 속기사로 일하다 보니 시의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수많은 조례안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입법화 되는지 알게 됐죠.”전근대사회에서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 항상 참석했던 사관이란 존재가 떠오른다.

보람도 있지만 힘든 일이기도 하다. “하루종일 회의가 진행되면 정신적·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회의동안에는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1시간 이상 쉬지 않고 회의가 진행되면 정신이 없어요.”
동시통역사의 경우, 2인1조로 작업을 한다. 15분이상이면 교대를 한다. 속기사도 비슷하다. 들리는 말을 통역사는 다른 언어로, 속기사는 글로 풀어내야 한다. 국회는 국내 최고의 속기사가 들어가지만 2인1조로 작업을 하고 15분마다 교대한다. 일의 고단함도 문제지만 기계가 협조(?)하지 않을 때도 난감하다. 기껏 정리한 기록이 저장되지 않거나 녹음파일이 재생되지 않을 때는 식은땀이 흐른다. 그럴 때는 회의를 촬영한 동영상 기록을 보면서 녹취를 풀어야 한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회기가 끝나면 좀 한가해지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경숙 씨는 “녹음한 것을 다시 들으며 정리작업을 시작한다”고 대답했다. 유난히 긴 행정복지위원회 회의로 정리할 분량도 많다. 녹음한 내용과 속기한 내용을 대조하고. 말을 다듬는 작업을 두, 세번 하다보면 다음 회기가 시작된다. 김포시의회에는 국경숙 씨를 포함해 3명의 속기사가 일을 한다. 그녀들의 손 끝에서 김포시의 역사가 기록되고, 저장된다.

이유경 기자

이유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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