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응접실/철거위기 백혈병 환자 돕기 천사 ‘권인숙씨’

【고촌‘문방구 아줌마’권인숙씨 “이사 짐 취급 말라”】

자신의 문방구를 즐겨찾던 10살 소녀가 백혈병 환자인 것을 알고 모금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고촌문방구’권인숙씨(60)가 20년 만에 도시개발로 인한 철거민 입장이 되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섰다.
90년대 중반 ‘고촌문방구’를 운영했던 권인숙씨는 김포시는 물론 전국적으로 백혈병 환자를 돕는 ‘문방구 아줌마’로 유명했다. 당시 김포시내 언론을 비롯 조선일보는 ‘문방구 아줌마의 이웃사랑’을 전했으며 감동은 징검다리가 되어 전국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어려운 이웃과 늘 함께했던 그녀는 신곡7지구 고촌행정타운에 밀려 이사비용만 손에 쥐고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하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있다.

‘고촌문방구’에 이어 현재는 서점을 운영하는 권인숙씨의 터는 24년간 살림과 영업을 함께해 온 곳이다. 워낙 소박하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그녀를 위해 집주인은 ‘돈을 더 받지 않을 것이니 살기 싫을 때까지 있어라’고 했으며 권인숙씨는 거주의 불안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고촌행정타운이 시작되면서 터무니없는 영업보상비를 통보받고 적정보상을 요구하는 처지가 됐다.

남 돕다 나를 잃다
1991년 고촌초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시작한 그녀는 2008년 학교가 이전하기까지 19년을 ‘문방구 아줌마’로 살았다. 이후 학교와 함께 학생들이 사라지면서 남은 문구용품 전부를 20만원에 팔고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고 서점을 열었다. ‘자신’만의 삶을 고집하지 않았기에 가진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김포도시공사가 제시한 이전비용을 포함한 영업보상비는 다른 지역에서 가게하나 얻을 정도도 되지 않는다. 가게는 고사하고 살림집조차 생각할 수 없는 처지에서 이사 결정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웃들과 함께 경기도 토지수용위원회에 보상비 재결신청을했다. 살면서한번도 해보지 않은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60년만에 처음 ‘분노’라는 것을 접하며 권인숙씨는 빛바랜 기억속의 특별한 사진 한 장을 떠올린다.

10살 승은의 생명을 위해
1996년. 항상 웃는 얼굴로 가게에 들어오던 10살 승은이가 어느 날 백혈병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웃음을 찾아 주고 싶은 마음에 모금함을 들고 무작정 거리로 나섰던 것이 백혈병 환자를 위한 모금 활동의 시작이 됐다.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승은이의 맑은 웃음을 떠올리며 모금운동과 함께 식당을 돌며 쥬스를팔아 770만원을 전달했으며 고촌초등학교 체육진흥회와 헌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권인숙씨의 시작은 김포시 전역으로 번져갔지만 결국 그해 9월 승은양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러나 故신승은양을 위해 지펴진 이웃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래를 치른 뒤 승은양 어머니가 찾아와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며 하염없는 울음과 함께 20만원을 손에 쥐어주었다. 권인숙씨는 이 돈을 어떻게쓸까하고 생각하다 다른 백혈병 환자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그녀가 찾아 낸 환자는 대곶면에 거주하던 마상훈군. 김포공고를 졸업하고 혼자된아버지를 위해 일을 하던 중 백혈병 투병을 시작한 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김포군민 한마음 걷기대회 행사장에서 모금통을 들고나가 40만원을 모금해 이를 전달했으나 마상훈군 또한 그해 11월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신승은양 및 마상훈군 돕기에 앞장서면서 권인숙씨는 불우이웃돕기 후원자 모임인 ‘한사랑’을 결성했다. 10명의 회원으로 탄생한 한사랑은 매월 고촌문방구에서 모여 정기모임을 갖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방안을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면역결핍증을 앓고있던 김포공고 기계과 3학년 서영준군의 소식을 접하고 그녀의 초등학교 친구들을 통해 치료비를 모금해 전달했다. 또 2005년 3월 간이식 수술 후유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이웃고촌읍 임종수씨를 위해 십시일반 모금에 나서 209만원을 그의 아내 안종현씨에게 전달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은 셀 수 조차없다.
어려운 이웃을 돕던 시절, 권인숙씨는 “‘이럴 때는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한다.

‘1%의 희망일지라도’
지난 연말 지인이 100만원을 보내왔다. 권인숙씨는 김포사랑운동본부와 함께 찾아가 연탄을 배달하며 3명의 할머니가 함께 거주하는 곳에 연탄과 식료비로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에서 재배한 검은콩도 이들 할머니에게 함께 전했다. 이날 연탄 전달 일에도 동참한 권인숙씨는 성금을 전달하며 “연탄을 전달하는 사랑본부와 함께 해서 보람있었고, 할머니들이 춥지 않게 지내며 밥을 거르지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1985년 효부상에 이어 1997년 경기도 ‘자기모습만들기 큰 상’(인보협동부분)을 수상한 바 있는 권인숙씨는 젊은 시절 어려운 이웃에게다가가 ‘1%의 희망일지라도 놓지 말라’고 독려했지만 이제 그녀가 1%의 희망을 위해 하루를 살고있다.

신곡7지구 행정타운 건설을 앞두고 3곳의 감정평가사가 작성한 영업보상비에 대해 권인숙씨와 주변 영업권자들은 3개월 평균 영업이익의 25%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0년 따뜻한 사회를 위해 애써온 권인숙씨의 2015년 겨울은 유난히 춥다. 이제 김포사회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때다.

곽종규 기자  -

<저작권자 © 김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