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응접실/명선(茗禪)차인회 김덕년 회장

차(茶)를 통해 나를 다스리고 이웃과의 담장을 허문다.

그를 마주할 때는 몸이 단정해지고 생각은 고요해 진다.
흔들리던 마음과 격한 마음마저 평상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는 자그마한 찻잔 속에 담긴 찻잎을 우려낸 물 한잔이다.
“차나 한잔 하고 가시게!”
당나라 때 고승 조주선사가 자신을 찾아온 수행자들에게 한 이 말에는 ‘차를 마시는 것이나 선을 하는 것이나 수행하는 것은 마찬가지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뜻이 담겨 있다.

김포시 장기동 초당마을에는 무향다실(無響茶室)이 있다.
‘마음의 울림이 없는 고요하고 깊은 계곡 같은 방’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에서 차(茶)를 생활로 불러들여 문화 사랑방의 대문을 연 사람들이 모여 명선(茗禪) 차인회를 만들었다.
차를 몹시 좋아했던 추사 김정희선생이 함께 차를 즐겼던 초의선사에게 선물한 휘호에 ‘명선’이 있다. ‘차를 마시며 선에 든다.’는 의미의 명선을 무향다실 사람들은 그들의 문패로 삼았다. 3년이 되어가는 무향다실의 명선차인회는 예와 법을 강조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차의 정신과 문화를 바탕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공통체적인 삶의 향기를 김포시내에 넓혀가고 있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미소로 그 뜻을 아는 명선 차인회 김덕년 회장(54)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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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선차인회는 형식만을 강조하며 차를 내는 일본식 다도에 집착하지 않는다. 차의 본질적 요소와는 소통하지만 형식만 치중하는 것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차 잎 따기에서 차를 우려 마시기까지의 과정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행위며 차의 맛, 향기, 빛깔내기는 반복 수련하는 동안 습득되는 것이다.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좋은 습관이 반복되면 품성이 되며 품성이 쌓이면 덕이 된다. 명선차인회는 차의 본질적 요소에 이웃과 소통하는 문화 사랑방을 피워냈다.

찻잔 속에 어우러진 이웃
명선차인회는 3년 전 김포한강신도시에 인생의 여장을 푼 김덕년회장이 그의 아파트거실에 마련한 무향다실에서 차를 좋아하는 이웃들과 차를 즐기며 시작됐다.
차를 즐기는 이웃들이 조금씩 늘어나 20여명이 되면서 명선차인회가 됐고 7~80명으로 늘어나면서 새로운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현재 아파트 빈 공간에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물색하고 있다. 차를 매개로 한 문화사랑방 회원은 어느 듯 120여명에 이르렀으며 4~50대를 주축으로 30대와 70대가 찻잔 속에 함께 어우러져 있다.

오프라인에서 시작된 명선차인회는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을 겸하면서 매월 두 번째 토요일 7시 무향다실에 모여 차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담장을 조금씩 낮춘다. 거대한 콘크리트 속에 조그마하고 소담스런 소통의 공간이 피어난 것이다.
차는 다려내는 사람인 팽주(烹主)에 따라 맛과 멋이 달라진다. 무향다실에서 차를 내는 소양을 익하고 다진 사람들이 이제는 고촌, 통진, 풍무동 등 3곳에 따로 다실을 냈다. 소통의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회원이 늘어난 만큼 차의 향기도 확산되어 무향다실에서 나누던 모임은 3곳의 다실로 늘어났다.

5월 지리산 차축제 탐방
명선차인회는 올해 문화답사와 인문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문화답사는 오는 5월 지리산 야생차문화축제에 참가해 차를 다루는 과정을 실습하는 것이다. 야생차의 첫 재배지인 지리산 자락에서 만나는 싱그러움을 품고 있는 녹차 밭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축제다. 그리고 차 박물관 탐방도 계획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말 명선차인회 송년차회에 이어 올해는 아트홀에서 각종 문화가 차와 함께 어우러지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글과 그림, 그리고 도자기 등 예술 공예품 가운데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기회도 갖고자 하는 것이다.

형식탈피, 차 문화 즐겨
“차를 내는 형식을 강조하는 관념적인 행다법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워 오히려 차 문화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김덕년 회장은 형식에서 벗어나 즐겁게 차를 마시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렇다고 김덕년회장이 차와 관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분재와 꽃을 좋아하는 차분한 성격으로 BMW, 아우디 본부장과 이사를 거쳐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지만 16년 전부터 사무실에 다기를 마련하고 직원들과 함께 즐기며 스스로 공부하면서 차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소통에 이만한 것도 없다는 것도 그 당시 체득한 것이다. 차를 내는 과정과 천천히 마시며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차 한 잔 하자’며 찻잔을 건네고 대화하다보면 숨겨져 있던 마음들이 차를 통해 복원되는 것을 발견한다. 명선차인회도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혼자마시다 이웃과 함께 나누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태동했다.
“김포시내에는 커피숍은 많아도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한 곳도 없습니다.”
색과 향, 그리고 도자기의 아름다운 촉감이 어우러진 문화사랑방이 늘어나 정신적인 교감이 확산되는 것을 김덕년회장은 꿈꾸고 있다.

곽종규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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