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응접실/대통령상 수상 손영학 각자장인(刻字 匠人)

하루 40자씩 하루도 빠짐없이 목판에 세긴 41,800자가 모여 한국의 대표적인 고대소설 심청전의 인물들을 되살렸다. 1㎠ 크기의 글자 하나가 생명을 얻는데 8분, 하루 5시간씩 목판속의 글자는 3년에 걸쳐 심청전이 되어갔다.
5평 남짓한 공방에서 칼과 망치를 손에 쥐고 조선시대 한글소설에 생명을 불어넣은 은곡 손영학선생(65)이 지금까지 목판에 세긴 글자 수는 10만4천4백자에 이른다. 혼자였지만 목판속의 주인공은 춘향과 홍길동에 이어 심청이가 되어 그와 함께 했다.
사랑을 생각하며 춘향전을 각자하고 탐관오리를 질타하는 마음을 담아 홍길동전을 새겼으며 심청의 효를 떠올리며 목판에 한자 한자 새겼다.


심청전목판 대통령상 수상


46,000자로 목판에서 되살아난 춘향전은 2007년 제32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16,640 글자로 되살린 홍길동전은 2009년 국무총리가 그의 이름이 된 상으로 반겼다. 그리고 올해 심청전은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지난 6년간의 고행을 마무리했다.
문화재청은 '심청전 목판복원'에 대해 대통령상을 결정하며 "4만자에 달하는 글자를 새기는 끈기와 정성으로 전통공예의 가치를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10년 전 춘향전을 목판에 새길 무렵 그의 엉덩이에는 계란크기의 종기가 생겼다. 그는 ‘하루도 글자를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마취도 거부한 채 입에 수건을 물고 생살을 찢었다. 3개의 목판원본은 그렇게 세상과 만났다.
“취미가 곧 의무가 됐습니다. 처음부터 이럴 줄은 몰랐으며 춘향전이 끝인 줄 알았지만 4년에 걸쳐 2개의 목판을 더 완성한 것은 사료적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국문고대소설 목판은 개인수집가였던 김산불씨가 대부분 소장하고 있었으나 6.25동난 때 폭격으로 전부 소실된 이후 50여년 만에 손영학 장인에 의해 되살아났으며 이들은 모두 국가 재산으로 귀속됐다.

특히 장인 손영학에 의해 만들어진 목판인쇄물 춘향전은 하버드대학의 의뢰로 지난 2월 하버드대학 옐친 도서관 고서실로 보내졌다. 이것은 1943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목판으로 출판된 유일한 한글 고대소설의 가치를 지닌다.


손영학 선생은 詩人이다.


30대에 박재삼시인의 추천으로 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목판에 글을 새기는 각자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홍익사대 부속여고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1976년, 광릉수목원에서 나무판에 글을 새긴 각자작품을 처음 만나 매혹을 느끼고 토요일마다 인사동을 뒤져 작품을 관찰하고 혼자 독학하며 이듬해부터 스스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관심으로 시작된 각자는 취미가 되어 1996년 경인미술관에서 자작시로 목판 전시회를 가졌고 이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106호 철제 오옥진 선생을 만나 수제자가 되면서 취미는 의무로 변했다. 그리고 고대 한글소설 목판을 직접 복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끈기와 집념의 세월을 이어간 것이 오늘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03년 철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106호 이수자로 전통각자보존회 상임이사를 맡아 한국 각자분야의 중심이 됐다.


사재 1억원 털어 3개 목판 복원


손영학 선생이 각자하는 칼의 종류는 모두 6개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제작한다. 칼과 나무는 각자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창작보다 더 어려운 복원은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나무를 결정하고 나무판을 마련하는 과정은 더욱 신중하다.

손영학 선생은 결이 좋고 오래 견딜 수 있는 산벗 나무를 찾아 적당한 크기와 부피로 켜서 바다의 짠물에 일정한 기간 담궈 결을 삭이고 밀폐된 곳에서 쩌 진을 빼고 살충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 뒤틀리거나 뻐개지지 않게 응달에서 충분히 건조시킨 다음 나무판의 양쪽 표면을 대패질하여 반드럽게 하고 가장자리에 마구리를 붙이면서 비로소 목판복원의 준비를 마친다.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만 대략 6년. 꼼꼼하고 치열한 정성을 담아야하는 과정인 한글목판 복원은 여기서부터 각자(刻字)가 시작됐다.
경비도 만만하지 않다. 지금 3개 목판을 복원하는 데만 1억여원의 사재가 들어갔다.


한글소설 목판복원이 꿈


손영학 선생은 앞으로 목판기술서적 출판과 함께 유충열전, 금방울전, 흥부전, 박씨부인전 등 한글 목판을 복원하는 꿈을 가졌다.
“8만대장경 등 현존하는 목판은 경전이며 한자로 되어 있는 반면 한글목판은 소실되어 사라졌습니다. 국문소설은 조선시대 어려웠던 시절, 즐겨 읽으며 서민들이 위로받았던 책이며 서민의 삶 자체입니다. 출판 또한 관주도가 아닌 민간주도의 출판된 것을 생각하면 한글이 폭넓게 보급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혼자 개인이 아닌 국가가 복원에 나서야 합니다.”

손영학 선생은 또한 김포의 대표적인 학자인 양승지선생과 조헌선생의 문집을 목판으로 제작하는 꿈도 가지고 있다.
김포시 고촌읍 소재 들꽃풍경 내 조그만 공방을 마련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손영학 선생은 15명의 제자를 두고 앞으로 남은 꿈을 목판에 새기고 있다.

곽종규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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