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응접실/동화작가 임나라





“제 수줍은 동화나라 푸른 숲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세모의 겨울 江가에 서서 온 길을 돌아봅니다. 수많은 발자욱들은 서로 엉키어 울음 울듯, 위로하듯 눈을 빛내고 있습니다. 열심히 달려왔건만 지나온 흔적은 아쉬움으로만 남습니다.’…
계절의 끝에서 새해를 맞이할 무렵이면 임나라 동화작가는 매년 천여명에 이르는 지인들에게 직접 쓴 연하장을 보낸다. 임작가는 올해가 시작되기 전에도 어김없이 ‘겨울 江가에 서서’라는 제목의 연하장을 띄웠다. 그리고 말미에 “우리 이제 다시 비워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저 멀리 서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차디찬 겨울 江은 또다시 속살거리는 봄 햇살을 맞이하게 되리라 믿으며…”라고 마무리했다. 320여字, 직접 쓴 길지 않은 年賀인사는 한편의 ‘동화’를 전한다. 나이를 더해갈수록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더 많이 맞이하는 ‘어른’들과 ‘생명의 순환’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동화作家의 기도를 담았다.

서울신문·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쉽게 쓰는 사람이라 한다. 누구나에게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는 결코 어려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생의 토양이 되는 유년기 아이들에게 세상의 뜻을 전하려는 동화작가는 누가 뭐래도 글 잘쓰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살아가는 모습이 초록빛 나무를 닮은 여류 동화작가 임나라는 그럼에도 다작을 하진 않는다.

천안여고시절 여학생 잡지사 공모에서 <여학생문학상 대상>을 받고 당시 작가의 산실이었던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현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파랑이의 구름마차’가, 이듬해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하늘마을의 사랑’이 동화부문에 당선됨으로써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10년전 ‘하늘마을의 사랑’을 제목으로 15편의 동화를 담은 창작동화집을 발간한 이래 금년까지 5판인쇄를 거듭하고 있다. 임작가가 다작을 하지 않는 것은 인생에 대한 깊은 관조에서 비롯된다.

함부로 사물을 보지 않고 매사가 진지하다. 임작가의 문학세계가 성장동화(成長童話), 성장아동소설(成長兒童小說) 임을 볼 때 당연한 결과다. 前아동문학학회 이재철회장은 임작가에 대해 “어린이가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가족과 더불어, 친구와 더불어 성장해 가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쓰는 그는 절대로 외형만을 다루지 않고 내면의 참된 의미를 밝히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고 평하고 있다.

깊은 관조, 多作않는 童話작가

임작가는 1950년, 그녀 표현대로 제비꽃과 패랭이 꽃이 필 무렵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그런 탓인지 그녀는 제비꽃과 패랭이꽃을 닮아있다.

문학 소녀였던 그녀는 “저는 제 자신을 해체시킬 용기가 없어서 소설은 쓰지 못했어요.”라며 소설을 쓰지 않은 이유를 말했지만 해체보다는 씨 뿌리고, 키우고, 자라나게 하는 성장동화를 택했으니 문학을 통해 튼실한 수목원을 가꿔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중년에 이르러 실제 나무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세상의 아이들이 굵고 단단한 수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문학적 토양을 일구던 그녀는 현실에서 나무를 통해 제대로 된 성장 공간(집)을 만들기 위해 신경의 그물망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목조건축 교육병행, 창작과 상생

동화작가를 병행하며 임작가가 평생 업으로 정열을 쏟는 것은 목조건축 교육이다
첫 동화집 ‘하늘마을의 사랑’을 펴내며 시작한 목조건축 교육은 ‘쓰는 일에서 가르치는 일’로 창작과 현실을 이어갔다. 가르치는 일과 쓰는 일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임나라 작가에게 있어 ‘나무'는 ’동화나라‘가 곧 ’나무나라‘ 로 인생에 있어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1997년 IMF로 온 나라가 엄청난 위기상황을 맞이한 때에 건강타운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목조건축 일을 시작했으니 무모했을 수도 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놀랐어요.”
위기상황에서 시작된 목조주택 교육은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냈다. 김진희 교수와 임나라 작가의 생각은 97년 안국동 수운회관에 목조건축교육을 태동시켰다. 첫 해 건축시공자, 건축설계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23명이 시작, 이듬해는 더 많은 학생들이 수학했고 그 숫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갔다.

그리고 99년 강남구 대치동에 (사)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회장 김진희)를 창립한데 이어 3년후에는 건설교통부 산하의 교육기관으로, 또 국민대학교 사회교육원 부설 목조건축 디자인센터를 만들면서 전국에 목조건축 교육의 붐을 조성했다.
동화작가 임나라는 이때부터 ‘작가’라는 정신적 호칭과 함께 ‘국장’이란 현실적 호칭이 하나 더 따라다니게 됐다.

올해 2번째 창작동화집 발간

임 국장은 센터 한켠에 ‘노란 상자’를 만들어 놓았다. ‘만남의 상자’라고도 불리는 이 상자의 정체는 이웃사랑의 공간이다. 이제는 센터를 방문하는 누구든 이곳에 조금씩 성금을 넣고 간다. 이렇게 해서 1년간 모인 돈은 연말 이웃을 위해 쓰인다. (사)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은 성남시에 소재한 결손가정 어린이들이 수녀들의 보호아래 지내고 있는 <작은 예수의 집>. 98년부터 시작한 이 일은 해를 거듭할수록 호응이 높아져 회원들 간 우의를 다지고 기쁨도 나누는 소중한 끈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세상은 모두가 동화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동화의 책갈피에 존재한다. 동화작가의 목조건축 교육일은 그래서 동화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계절의 끝에 서서 새로운 시작을 맞으며 모든 회원들에게 일일이 친필로 쓰는 연하장과 그것에 감동한 사람들의 가슴이 다시 전해져 오는 과정속에서 동화작가는 어쩌면 따로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임나라 작가의 마지막 말에서 돌아오는 내내 그녀는 천상작가임을 생각하게 했다.
“올해 두 번째 동화집을 묶을 거예요. 이곳 일은 저에게 좋은 소재가 되지요.”
그러고 보니 동화쓰기와 목조건축 교육은 작가에게는 아주 잘 어울리는, 평소 그녀가 추구하는 서로를 일으키고 돕는 길(相生)이 이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사회 상생의 그물망이 오늘 하나 놓여지고 있었다.

취재/최의선 편집위원<작가>ces-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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