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을 때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꽃향기가 어찌나 진동하던지 놀라 집안을 둘러보니 온통 꽃 천지였다. 그것도 헤라클레스가 빨아먹던 쥬노의 젖방울이 떨어진 자국에 피어났다는 백합이 커다란 화병에 가득 담겨 자칫하면 꽃 내음에 질식해버릴 정도가 아닌가.

친구의 결혼코디를 맡은 지인의 딸이 방문객을 위해 맘껏 가져온 것이라며 지인은 우리가 뜻있는 일에 동참하려니 하나님이 이런 배려까지 해주시보다 너스레를 떨며 향기로운 밤을 가져보자 생뚱맞은 발상까지 내놓았다.

그 날 우리는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봉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는 태안에 어떤 이벤트를 하러 가기위해 모인 것이었으며 부득이 새벽 일찍 출발해야 하기에 출발지에서 가까운 지인의 집에 하루 밤 묵게 된 것이었다.

필자는 별 다섯 개 특급호텔도 이만큼의 꽃은 흔치 않다고 감탄하다가 우리만 맡기에는 너무 아까워 친구 몇을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이틀 후, 정말 가까운 친구 몇의 꽃향기 만남이 이뤄졌다. 모두들 바쁜 사람들이지만 시절도 어수선하니 이런 때일수록 꽃향기로 마음을 달래보는 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친구들을 부르게 된 것이었다.

워낙 음식 솜씨 뛰어난 그 집 마나님의 정성까지 곁들인 샤브샤브 전골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던 중에 민속학자 이수자가 이 모임은 <꽃을 보니..>로 해 누구든 꽃이 생기거나 피면 느닷없는 부름을 하고 연락을 받으면 득달같이 달려와야 한다는 참 별스런 모임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우리는 그게 재밌어서 배를 잡고 웃었다.

필자는 예전 주택에서 살던 시절 꽃으로 인해 이웃사촌들과 정겨운 만남을 가졌었다. 거실에 영산홍이 피었으니 차 마시러 오라는 이웃사촌의 부름이 있는 날은 점심 수제비로 배 가득해서 헤어지고, 국화꽃이 만발했을 때는 막걸리 파티도 열었었다.

행운목이 피어서 만나고, 개발선인장이 꽃을 수두룩하게 펴서 만나고... 참 고단한 삶을 위로받으며 살았었다.
해서 지금도 그런 꽃을 보면 정겨웠던 그때가 떠오르고 그 얼굴 하나하나가 늙지도 않은 그때 그 모습으로 떠오른다. 연인의 꽃다발, 온갖 이름의 축하 꽃다발 외에도 꽃은 이런 연유로 우리네 삶과 가까이 있으면서 정겨운 친구가 되어준다.

우리나라는 사시사철 꽃이 피는 산과 들이 있고 비닐하우스는 전천후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또한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를 가꾸는 사람들이 많아 집안에서도 꽃이 피고 진다.

난에 대가 올라오더니 마침내 꽃망울이 터진 날, 철쭉이 몽우리를 터트린 날 등등... 그럴 때 지인을 불러 차 한 잔 나누면 삶이 한결 향기로워 질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삶이 힘들수록 이웃과의 정겨운 만남은 위로가 될 것이다.

최의선 본지 편집위원.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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