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20 시극페스티벌 '시, 극에 빠지다' 전체 출연자 |
김포문화재단 지원, 이재영 총괄기획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향수'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이 곡은 정지용 시인의 시가 노래가 된 것으로 시와 노랫말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대표작이다.
시와 노랫말의 경계가 넘나들 듯 지난 1일 김포시낭송가협회는 시와 연극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2020 시극 페스티벌 ‘詩, 劇에 빠지다’를 무관중 비대면 공연으로 제작해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김포에서 처음 시도된 시극페스티벌은 (재)김포문화재단(이사장 정하영)의 지원사업으로 이재영 전문MC가 총괄기획하고 박철민 작가의 대본 천재시인 이상과 고려장을 소재로 한 세 편의 시극에 17명의 전문낭송가가 출연하여 열연을 펼쳤다.
행사에 앞서 김포시낭송협회 이재영 대표는 “코로나19로 시민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어 다소 아쉽지만 김포에서 시극페스티벌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준 김포문화재단에 감사드린다.“고 했으며 이명숙 김포시낭송협회장은 ”김포시낭송협회는 낭송예술을 동트는 여명소리와 같다고 생각한다“면서 ”김포시낭송협회가 한발 한발 발전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김포문화재단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
| 천재 시인 이상의 삶과 시를 극으로 만들어낸 '이상! 세계 제일의 천재시인' 출연자 |
‘詩, 劇에 빠지다’의 첫 번째 작품은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김해경’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스물일곱 해를 살다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李箱)를 무대에 올렸다. 당시 주변지인들을 6명의 시낭송가가 ‘이상! 세계 제일의 천재 시인’으로 묘사했다.
모더니스트이자 문학평론가 김기림 시인役 채수덕 낭송가가 나레이션을 맡았으며 △이상役 이근배 낭송가 △소학교친구 구본웅役 최명용 낭송가 △변동림役 이명숙 낭송가 △금홍役 윤옥여 낭송가 △최정희役 신영애 낭송가가 각각 열연했다.
시인 이상과 9인회 맴버로 활동했고 평생을 동행한 문우이자 형제였던 시인 김기림은 프랑스를 가려했던 이상을 설득하여 일본으로 대려간 장본인으로 극에서 “‘이상은 동경과 서울이 비슷하다’며 동경에 온 것을 후회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상(이근배 낭송가)이 등장해 자신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낭송했다.
“임의의 반경의 원/ 원내의 일점과 원외의 일점을 결부한 직선/이 종류의 존재의 시간적경향성 직선은 원을 살해 하였는가/”
다시 등장한 김기림은 “이상은 특유의 시선으로 생명을 보고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천재시인이었다”고 덧붙이며 출연자들은 난수표같은 난해한 이상의 시를 낭송으로 이어갔다.
이상과 짧은 결혼생활을 한 수필가 변동림(1916~2004·이명숙 낭송)은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19살 당시 한눈에 천재를 알아보고 소학교 친구 구본웅이가 ‘이모 박제가 된 천재 좀 구해주시오’라는 말에 1930년에 이상과 결혼해 생활력 없고 폐병환자였던 이상을 극진히 보살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이상이 동경에서 사망했을 때 그의 시신을 수습해 조선으로 가져왔지만 함께 산 것은 3개월 남짓, 결혼생활은 겨우 6개월이었다”며 함께 생활하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1933년 가톨릭청년지에 발표됐던 시, ‘거울’을 낭송했다.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가 있소~”
김기림은 “이상은 집안의 기대를 뒤로 하고 미술과 음악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세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조선의 천재를 얻게 되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이상은 시대의 아나키스트였다”며 화가 구본웅을 무대로 불러냈다.
이상 보다 4살 많았지만 소학교 동기였던 화가 구본웅은(최명용 낭송가) “어린 시절 병으로 곱추여서 학교에서 놀림감의 대상이었지만 형처럼 대해준 유일한 친구가 이상이었고 동경에서 27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평생 친구였으며 공통점이 많았다”고 했다.
구본웅은 이어 “주위에서는 조선의 천재, 이 나라 초기 서양화단의 대표적인 야수파화가였던 나를 한국의 로트랙으로 불렀고 이상은 한국의 보들레르 또는 랭보에 비유했지만 이상은 보들레르나 랭보, 섹스피어와 괴테를 능가하는 진정한 작가였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1932년 조선과 건축지에 8편, 1984년 조선중앙일보에 15편을 발표하고 난리가 났던 오감도 가운데 1을 낭송했다.
다음은 금홍이가 이어받았다. 금홍은 폐병치료를 위해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로 간 곳에서 만난 여인이다. 금홍役을 맡은 윤옥여 낭송가는 “당시 저렇게 잘 생기고 똑똑한 사람이 왜 폐병을 앓고 있을까 매우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어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됐고 이후 서울로 떠난 이상은 금홍에게 다방을 하자는 연락을 했고 그렇게 서울 제비라는 다방의 마담이 됐다”면서 “이상의 문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고 경영도 어려워져 4년을 사랑하다 헤어졌다”고 그리워하며 이상의 시 ‘꽃나무’를 낭송했다.
다시 등장한 김기림은 이상에 대한 기억을 쫒아갔다.
“첫 월급 55원을 받고 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했던 김해경이 건설현장에서 김씨를 이씨로 잘못알고 이상으로 불리며 이상이라는 필명을 얻게 됐다. 시대를 앞서간 언어의 연금술사 이상에게 21살 때 찾아온 폐결핵은 그의 생명의 불꽃을 꺼져가게 했고 가난은 그를 잠들게 했던 원인이다.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를 30편을 연재코자 했으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의 항의로 15편을 끝으로 중단되었지만 오감도는 우리현대문학의 전무후무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이어 이상役을 맡은 이근배 낭송가는 시인 이상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한문학자이신 백부에 양자로 입양되어 3살 때 이미 천자문을 끝냈다. 서울공대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그림을 좋아했고 조선미전에도 입상할 만큼 실력도 있었지만 나는 문학을 선택했다. 숫자나 기호로 된 시는 그 당시 시작풍토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고 무한한 상상력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짧았지만 아내 변동림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었고 금홍이의 정열은 나의 작품 혼을 일깨웠다.”
그리고 짝사랑한 여인 소설가 최정희를 “내 정신의 반려였다”고 소개하며 자신의 시 ‘3차각 설계도’(선에 대한 각서5)를 낭송했다.
소설가 최정희(役 신영애낭송가)는 “이상은 하루에 담배 5~60개피를 피웠다. 그가 죽을 때 의사는 말라버린 그의 폐를 보고 한탄을 했다죠. 당시에 내가 그를 사랑하지 못한 것은 그의 기행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간 이상이 아니라 문학인 이상을 동경했으며 그래서 그가 보낸 연서를 조용히 찢어버리기도 했다”며 편지 가운데 한편을 낭송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친구 구본웅은 “한일합방이라는 비극적인 해에 태어나 1937년 일본에서 친구인 나와 김기림, 아내인 변동림의 품에 안겨 27살에 요절한 천재작가 이상은 죽는 날 ‘멜론이 먹고 싶다’고 했으며 아내 변동림은 멜론을 먹을 수 없는 그에게 멜론향기를 맡게 해주었고 박제가 된 천재 이상은 그렇게 세상과 이별했다”며 그를 그리워 했다.
김기림은 ‘이상! 세계 제일의 천재 시인’을 마무리하며 “이상의 시는 짧은 그의 인생과 달리 영원하고 깊으며 이 나라가 낳은 세계최고의 시인이 되었다”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연재 당시에는 살해위협까지 받았던 오감도 2를 불러왔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로 시작하는 오감도2는 5명의 출연자가 함께 낭송하며 막을 내렸다.
 |
| 고려장을 주제로 한 어머니, 나의 어머니 출연자 |
이날 시극페스티벌에는 1부와 2부 사이에 테너 이헌씨와 베이스 유준상씨가 정지용시인의 향수와 베이스 유준상씨의 백학, 테너 이헌씨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열창하며 시극에 감동을 더했다. 그리고 고려장을 토대로 한 효에 관한 시극 ‘어머니, 나의 어머니’가 5명의 낭송가에 의해 전달됐다.
곽종규 기자 gyoo4967@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DMZ 평화의 길 테마노선 투어 프로그램 개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