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어부, 펄떡거리는 행복을 낚는다
그물에 오르는 고기 때문에 행복한 권태환씨

‘보리가 팰 무렵 웅어가 올라오고 철쭉이 피면 황복이 올라오는 포구, 뱀장어, 황복어·장어·웅어·송어, 참게가 철마다 나오고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모이는 김포.

오랜 벼농사 지역으로 어촌과는 멀게만 느껴지지만 바다와 강이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김포에는 2곳의 포구가 있다. 서쪽 대명포구는 선단을 이룬 어촌이며 동쪽 한강에는 전류리가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간다.

삼면이 강과 바다로 둘러쌓인 김포의 서쪽을 흐르는 강을 염화강이라 부른다.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여 한 몸을 이루면서 생긴 이름이다. 하구의 물은 하루에 두 번, 밀려왔다가 되돌아 나간다.

바다의 조수는 진퇴를 반복하면서 밀고 썰지만, 전류리 포구 앞 강물은 3시간을 잇달아 상류로 치닫다가 9시간을 하류 쪽으로 쏟아져 내려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 밑까지 이른다.
그래서 전류리(顚流里)라는 이름도 생겼다. ‘강물이 거꾸로 뒤집혀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활발한 어촌이었던 이 일대는 6.25 전쟁이후 남북이 나뉘면서 막힌 공간으로 변했으며 이후 어부의 고기잡는 모습은 우리 시야에서 멀어지게 됐다. 이곳에서 40대 초반의 어부 권태환씨를 만났다.
<편집자 주>

"어릴 적 한강을 지날 때였어요. 그물을 걷어올리는 어부를 보았는데 고기가 펄떡펄떡 뛰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본 순간, 갑자기 제 심장이 펄떡거리는 고기처럼 요동치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느낌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 이후 꼭 한 번 저렇게 고기를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충동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살아오면서 불쑥불쑥 그런 충동에 사로잡혔어요. 그러다 서른 중반에 이르러서야 꿈을 이루게 되었지요."

서른여섯살 사내 어부를 꿈꿨다
서울이 고향인 올해 마흔의 권태환씨. 그의 직업은 한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다.
36살에 어부가 된 권태환씨는 이 일이 생계유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어부가 되었다.
그간 모은 돈으로 배를 장만하고 또 '내수면어업허가권'을 취득하여 한강어촌계의 일원이 되기까지 오로지 그의 머리 속에는 어부가 되고 싶다는 열망뿐이었다.

드디어 꿈이 이뤄지던 날.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요란한 배의 모터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그물을 걷어올릴 때는 색색이 아름다운 무지개 빛 세상을 걷어 올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어부가 되었고 한강어촌계 내수면어업허가권을 취득한 74척의 배 가운데 제일 막내가 됐다.

4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무지개빛 세상을 걷어 올린다는 그는 생각 같아선 팔뚝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도록 고기가 꽉 찬 그물을 끌어 올리고 싶지만 요즘엔 영 여의치 않다고 한다.

"웅어·황복어·뱀장어·누치·준치들이 잡히지만 요즘 들어 현저하게 물고기 수가 줄었어요. 아마도 모래 채취 때문인 것 같아요. 고기가 산란을 많이 해야 물고기 수도 늘어나는 법인데 모래 채취 때문에 제대로 산란을 할 수가 없어요. 또 모래 채취를 하다 보니 물속 플랑크톤이 자연 감소하게 되고 플랑크톤이 감소하다 보니 당연 물고기 수도 줄어들게 되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모래가 빠져나간 강바닥은 순전히 뻘 투성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물이 뻘 속에 묻히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요즘은 고기를 잡는 일보다 뻘 속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는 일이 더 많아요."

부부가 함께 고기를 잡다
권태환씨의 아내는 남편을 위해 '배조정면허증'까지 땄단다. 그리고 가끔 함께 한강으로 고기잡이를 나간다.
아내가 배를 조정해 미리 쳐놓은 그물이 있는 곳에 당도하면 남편은 그물을 끌어올린다. 그런 날이면 금방이라도 한강으로 도로 뛰어들 듯이 펄떡거리는 고기를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부부가 함께 먹는다.

권태환씨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 매일 행복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을은 무지무지 행복하단다. 어획량의 70~80%가 가을에 집중되는데 주로 장어가 많이 잡힌다.
또 장마철도 이 곳 어부들에게는 특별하다.
비가 많이 내려 물이 한강 둑이라도 넘을 때면 그야말로 장어 풍년을 이룬다고 한다. 물속에 잠긴 수풀 속 먹이를 찾아 장어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권태환씨. 어찌나 신바람이 났는지. 낑낑거리며 장어를 끌어올렸던 작년의 흥분이 다시 되살아난 듯 하다.

취재를 위해 권태환씨를 만난 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다. 배 난간에서 조금만 고개를 뒤로 젖히니 바로 하늘이다. 금방이라도 한강과 맞닿을 듯 낮게 내려앉은 하늘가로 갈매기는 또 한가롭다. 미리 쳐놓은 그물들을 찾아 조정키로 이리저리 방향을 잡는 권태환씨.

그물을 걷어올리는 그의 옆얼굴이 약간 긴장된 듯 상기된 표정이다. 번번이 허탕이다. 내 눈엔 어른 팔뚝 만한 제법 큰 잉어가 잡혔는데도 그냥 놓아준다. 그의 눈엔 아무래도 작아 보이나 보다.
잠깐. 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제법 큰 장어다.

12군데의 그물을 걷어 올렸다. 수확이라고는 장어 한 마리가 전부다. 어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 난감할 수도 있으련만 권태환씨의 얼굴은 전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해맑다.

수입, 밥벌이로는 모자라는 정도
이렇게 잡아 밥 먹고 살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적게 잡힐 땐 적게 먹고 많이 잡힐 때 많이 먹으면 된다.”고 답한다.

"많이 잡힐 때는 그물을 끌어올리기 힘들 정도"라는 권태환씨는 “주로 잡히는 고기는 황복어·장어·웅어·잉어지만 요즘은 웅어가 제철이라 제일 맛있다”고 한다.

어부 권태환씨가 잡은 고기들은 김포나 대명포구 인근 횟집이나 식당이 주거래처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황복어는 암컷이 `kg당 10만원, 수컷이 4만원 선에 거래된다.

한 달 수입을 묻자 그는 "용돈으로 쓰면 넉넉하고, 밥벌이로는 모자라는 정도"라고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권태환씨는 그물로 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그날까지 어부 일을 계속하고 싶단다.
김정혜기자

김포포구 가는 길

대명포구=김포시 대곶면 대명리에 위치한 대명포구는 강화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포구 중 하나다. 대명포구에서는 어촌계에 속한 어선 93척이 고기를 잡아 곧바로 어시장에 내놓는다. 전량을 당일 바로 그만큼 최고의 신선도가 유지된다. 꽃게, 대하, 망둥어, 주꾸미, 농어, 숭어를 비롯해 김장용 새우젓, 멸치젓 등을 살수 있다.

찾아가는 길: 강화를 향하는 48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김포 시내를 지나 누산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여기에서 덕포진, 대명리 방면(초지대교 이정표)인 352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초지대교 2Km 전방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된다.

△3~4월: 쭈꾸미, 농어, 광어, 삼식이, 새우, 망둥어 △5~6월: 꽃게, 병어, 밴뎅이, 낙지, 황복, 삼치 △9~10월: 꽃게, 병어, 밴뎅이, 새우, 전어 △11~12월: 쭈꾸미, 꽃게, 우럭, 광어, 삼식이, 장어, 간재미

전류리포구: 군사보호구역 안에 있어 군부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포구 내 횟집은 없고 선착장에 좌판 시설을 갖추고 있다. 초장이나 야채들을 가지고 가면 비교적 싼 가격에 횟감을 사 즉석에서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올림픽 대로를 타고 가다 김포.강화 제방 도로에서 78번 도로로 우회전해 전류리까지 직진하면 ‘전류리 포구’ 팻말이 나온다.

△3~4월: 숭어, 새우, 붕어, 잉어 △5~6월: 웅어, 숭어, 황복, 붕어, 잉어 △9~10월: 농어, 참게, 새우, 붕어, 잉어 △11~12월: 숭어, 참게, 장어, 붕어, 잉어

김정혜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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