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확 사진작가

오는 8월30일 인사동 나무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갖는 장명확 사진작가(56). 그는 이번 1주일의 전시회를 위해 1985년, 1000km에 이르는 도보여행을 떠났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 2대와 200통의 흑백필름, 등에는 텐트와 운동화 두 짝이 들여 있었다. 대구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고령, 남원, 광주, 화순, 여수, 마산, 부산을 거쳐 밀양에서 다시 대구에 도착하기까지 41일. 비포장 국도를 따라 하루 30km에 이르는 도보는 군대를 갓 재대한 25살 청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여정이었다. 걷다보면 배낭에 걸렸던 수건이 떨어지고 그것을 가지려 되돌아가는 10여 미터가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빛이 만들어내는 자연’만을 담았다.
목숨을 걸고 촬영한 사진들이 32년 만에 인사동 나무갤러리에서 세상과 만난다. “너의 사진에는 살려고 하는 숙주가 있다”는 지인의 말에 힘입어 장명확 작가는 32년 전 도보여행 길에 다시 섰다. 그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그의 사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걷는 것이 다름이다.

‘사진이 곧 인생인 작가’

한 컷의 풍경은 백번을 찍어도 제각기 다른 모습이다. 빛이 만들어 내는 순간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예술이 되는 경계는 빛과 교감하려는 작가의 숨결이다.

정지된 한 컷의 사진 속에 시간과 다양한 생명이 담겨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백만 컷을 가슴에 품고 있는 다큐 인물작가 장명확의 사진 속에는 국내 문인을 비롯한 만여 명의 인물, 1000여 곳에 이르는 조계종 사찰과 그 속에 담긴 셀 수 없는 한국의 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이 있으며 80년대 우리의 시골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람과 길, 삶들이 문화가 되어 꿈틀되고 있는 것이다.

41일에 이르는 남도 2,600리 도보 길은 그의 인생의 길이 됐다.
 

1,000km 도보여행을 떠나기 직전 자신을 촬영한 스물다섯의 청년 장명확.

그동안 그는 사진학과와 관련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학에서 사진을 강의하는 한편 지난 16년간 전국의 사찰을 두 다리로 걸으며 한국의 불교문화를 담고 국내 큰 스님들과 40여권의 불교서적을 만들어냈다. 인물사진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면서 국내 잡지사의 의뢰로 문인을 비롯한 만여 명의 인물이 그의 카메라로 빨려 들어왔다. 얼굴에는 천의 표정이 있다. 나이에 따라 변해가는 표정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은 ‘진실한 얼굴’의 경계를 만든다. 진실한 표정만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 이유로 장명확 작가의 인물사진에는 우연이란 없다.

'평생 길 위에 산 사진작가‘

고교 2학년 무렵 시작된 그의 사진인생은 도보 길을 떠나면서 100피트 필름을 36컷 간격으로 직접 잘라 만든 200통의 필름과 2개의 표준렌즈로 사진작가의 첫 발을 내딛었다. 우리 눈과 가장 닮은 표준렌즈를 통해 빛이 만들어 내는 진실을 변형시키지 않고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담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표준렌즈 2개와 7천 컷의 필름이 사진인생의 밑천이었으며 지금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숙주’가 됐다.

길 위를 묵묵히 걷는 동안 죽을 만큼 힘든 때도 있었다. 도보 길에서 한참을 걸어도 사람을 만날 수 없어 말을 잃었듯이 아내가 한 살과 세 살배기 아이 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그는 실어증을 앓았다.

‘목숨’을 담보한 사진들

텐트와 오두막, 남의 집 마루, 성당 등에서 잠 잘 때는 간첩 또는 강도로 오인받기도 했으며 하천을 건너는 다리 밑에서 걸인의 밥을 훔쳐 먹고 대신 담배 다섯 개비를 놓고 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맛있었던 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포장 아름다운 가을정취를 볼 때 아픔을 잊을 수 있었고 쓰러져 가는 나무, 칡덩굴이 속삭이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위안하고 교감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두 번 다시 같은 장면으로 다가오지 못할 풍경을 담았다. 하루에 몇 장의 사진을 찍지 못해도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찍고 남겨진 흔적들이다. 사진은 이렇게 늘 그와 함께 했다. 마치 그의 인생처럼.

‘붓다의 제자 비구니’의 공동저자

지난해 7월 그는 국제문화재단(이사장 전홍덕)이 발간한 ‘붓다의 제자 비구니’의 공동저자(사진담당)로 3년에 걸쳐 전국에 숨겨진 150곳의 비구니 사찰을 카메라에 담았다. 저자 하춘생 박사와 함께 한국불교의 비구니 역사를 세상 밖으로 내놓으며 한국의 아름다운 계절을 그 만의 시각으로 표현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평정심을 찾고 카메라는 놓으면 평정심을 잃는다”는 장명확 작가는 카메라를 잡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

욕심에 의한 상업적인 사진은 거액을 준다 해도 동의하지 않았던 고집쟁이였으며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사진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가난은 꼬리처럼 따라 다녔지만 그는 빛이 주는 예술을 평생 구현한 국내 몇 되지 않은 마지막 사진작가다.

[장명확 작가의 작품들]

곽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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